(이 글은 본래 올해 7월 1일에 페이스북에 써놓았던 글이다.)
사실 예멘인 난민들이 우리나라를 처음 찾아왔을 때, '왜 하필 우리나라에?'라고 생각했었다. 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고, 우리나라가 정권은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밑바닥 민중의 삶은 헬조선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국민들에게까지 그러는 나라에 이주민과 난민들의 인권이야 어떻겠는가? 물론, 한창 포탄이 떨어지고 방화에 살인에 강도에 전쟁 중인 자국보다야 우리나라가 낫기는 낫겠지만, 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겪게 될 수모는 너무나 뻔해 보였다. 그들은 아마 전쟁통에 '살아남았다'는 "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렵고, 더럽고, 험한 일(3D업종)을 하면서 살아가게 되겠지. 그리고 이 인종차별에 노동자 학대 가득한 세상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사람 나빠요. 한국 사장님 더 나빠요."라는 말을 처음으로 배우겠지. 과연 우리나라는 난민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기는 한 걸까? 결국 OECD 가입하는 조건으로 노조의 합법화를 약속해놓고 어용노조 만들어서 노조를 이간질하고 파괴했던 것처럼, 난민을 수용하기로 하는 협약 역시 ^선진국^이라는 간판 하나 달아보겠다고 난민을 수용할 생각도, 준비도 전혀 없으면서 무작정 일단 서명부터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정말 무책임하다. 결국 간판팔이나 해서 남 등쳐먹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실상이란 이런 것이다.
아브라함도 난민이었고, 이삭도 난민이었고, 야곱도 난민이었고, 요셉도 난민이었으며, 모세와 함께 이집트를 떠난 히브리인들도 난민떼였다. 세례자 요한도 어릴적부터 광야로 쫓겨나 살았으며, 예수님의 가정도 헤롯의 폭정을 피해 한동안 이집트에서 난민 생활을 해야만 했다. 뭐야 이거, 가만 보니 성경은 완전 난민사잖아? 지금으로부터 약 3천여 년 전,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소수민족이었으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억압을 당했지만, 지금은 유대인들이 도리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고, 못 살게 굴고 있다. 유대인들은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라 없는 사람들로서 나치의 최대 피해자들이 아닌가?
과거를 잊은 건 비단 유대인들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100년을 돌아보자. 그 기간동안 우리가 난민 아니었던 시절이 얼마나 되는가? 우리는 불과 100여 년전 나라를 잃고 전 세계 오지로 흩어졌으며, 특히 만주와 연해주, 북간도 일대는 우리 조상들이 집단적으로 이주하여 황무지를 개간하던 곳이다. 또 99년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세워진 대한국민의회는 난민의회가 아니면 무엇이며, 이어서 상해에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난민정부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또 일제 36년, 곧이어 찾아온 한국전쟁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난민으로 만들었는가? 그때 한반도는 지금의 중동과 같이 전세계의 골칫거리요, 또 남과 북, 어느 곳도 택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은 중립국에서 받아주었는가? 또 우리는 불과 4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외국인 노동자 신세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독일로 가서 광부로, 간호사로 파견되어 일하였는가? 바로 이러했던 과거를 잊은 채, 불과 수십 년만에 같은 처지의 난민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멸시할 수 있단 말인가?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방인들을 핍박하지 말아라. 너희도 이방인이었으니, 이방인의 심정을 잘 알지 않느냐?" 1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우린 40년 전까지만 난민이었을까? 난민이 누구인가? 나라를 잃었으면 다 난민이다. 그런데 문득 나는 불과 4년전 일이 떠올랐다. 4년전 봄, 우리는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다. 그날 우리는 국가가 국민을 저버리고 구하지 않는 것을 보았고, 나라가 수습하지 않아서 민간 잠수사들이 유해를 수습하다가 또 여러 사람이 죽고, 그런데 국가에서는 오히려 그들의 작업을 방해하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또 3년전 가을에는 국가가 국민에게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저지르는 것을 보았다. 그때에 밥쌀수입반대의 뜻을 품고 상경했다가 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를 맞고 농민 백남기 선생님이 쓰러지셨고, 그로부터 약 1년 뒤 돌아가시면서 박근혜 퇴진 촛불의 도화선이 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그해 겨울, 우리가 9년동안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줄 알았던 "국가"가 실은 존재하지 않음을, 우리가 국가로 착각했던 "국가"가 실은 어느 이익집단의 종이인형,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는 4년 전에도 난민이었고, 3년 전에도 난민이었고, 9년 전부터 난민이었고, 불과 얼마 전까지도 나라 잃은 백성이었다. "국가"는 있지만 국민을 버린 꼭두각시 국가는 사실 존재하지 않고 간판만 달랑달랑 달려있는 폐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생각해보면 지난 9년간만 우리가 나라 없는 백성, 난민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마 사람들마다 차이는 조금씩 있겠지만,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어나가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면 최루액과 곤봉의 세례를 맞았던 것이 불과 몇 년 전까지의 일이며, 지금은 최루액과 곤봉은 아니지만, 얼마 전에는 조삼모사보다 더한 조삼모삼, 줬다 뺏고 좀 더 빼앗는 최저임금법 개악이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또 학생들은 입시전쟁을 치르면서, 청년들은 취업전쟁을 치르면서, 입시지옥, 취업지옥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또한 전국적으로 개발, 재개발, 난개발, 젠트리피케이션 등으로 토지를 강제로 빼앗기고, 집에서 거리로 내쫓기고,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용역들이 무자비하게 들어와 집을 부수어도 "합법"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토지강제수용의 포괄적 피해자가 700만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이 사람들이 난민이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아니, 지금 당장 집 문을 나서 거리를 둘러보면 온통 재개발을 반대하는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이 지역에서, 언제 쫓겨날지, 언제 용역들이 들이닥칠지 몰라 애간장을 태우는 바로 우리가 예비난민이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우리는 예멘에서 온 사람들을 보고 저들을 난민이라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국민인가?
우리는 속고 있다. 단지 국가에서 "주민등록증"이라는 카드 하나 발급해줬다는 이유로 우리가 바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착각 말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묻는다. 과연 우리는 "국민"인가? 우리가 만일 국민이라면,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것인데, 우리는 국민의 의무는 다하면서 국민의 권리는 보장 받지 못하지 않는가? 노동자들은 노조의 활동을 제한 받거나 기업의 노조파괴책동에 인권을 유린당하여도 사법부는 기업 편만 들고 있지 않은가? 국가라면 오히려 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을 장려하고, 또 노동자들의 의식수준 향상을 위해서 일만 하지 말고 학습도 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적극 나서 노조의 학습시간을 보장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오히려 노조를 파괴하고,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유지하자는 데에만 동조하고 있으니 이 무슨 일인가? 또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권리대로라면 우리는 모두 주거권을 보장 받아야 하며, 거주•이전의 자유에 따라 어디서든 천막치고 살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아무 데나 들어가 살 수 있는가? 아니, 오히려 돈이 없으면 살던 집에서도 내쫓기고, 거리에 천막이라도 치고 살아보려 하면 공권력이 와서 부수고, 용역들이 와서 부수고, 아주 그냥 삼중고가 아닌가? 이런데도 우리가 국민인가? 이런데도 우리가 난민이 아닌가? 우리가 난민이라면 우리는 우리를 찾아온 난민을 배척해야 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환대하고 포용해서 함께 손을 잡고 우리를 못살게 구는 이들에 맞서 투쟁의 대열을 강화해야 하는가?
그런데 우리는 이 시점에서 난민은 왜 생기는가 질문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난민이 왜 생기는가? 사람이 태어나는 방식에 다름이 없이 모두가 빈 손으로 태어날진대 어째서 누구는 국민이고, 누구는 난민이 되는가? 난민은 누구인가? 나라 잃은 사람은 다 난민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라는 왜 잃어버리는가? 나라가 있으니까 잃어버리지. 나라가 처음부터 없으면 잃어버릴 염려가 없지. 아하, 그렇구나! 난민은 국민이 있어서 생기는 것이구나! 그렇다. 난민은 국민이 있기 때문에 생긴다. 땅은 전부 이어져 있는데, 지도에 선 하나 그었다고 여긴 내 땅, 저긴 네 땅이 되고, 그 선이 국경선이 되고, 여긴 내 나라, 저긴 네 나라, 국가가 되고, 국민이 되고, 국민이 아니면 난민이 되니까 그래 난민은 국민이 있으니까 생기는 것이렷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우리에게 주민등록증이라는 카드 하나 발급해주더니 이게 있으면 국민, 없으면 국민이 아니라는 걸 보니, 그래, 난민은 국민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로구나! 그렇다면 국민이 없어지면 난민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럼 이제 우리를 뭐라고 부르지?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인민이라는 말이 있었다. 인간이라는 뜻이다. 인간 중에도 참 인간을 인민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승만정권이 이 인민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지워버렸다. 그때부터였다. 인민이 사라지고 국민이 등장해서 국민 아닌 것들을 모조리 난민으로 만들어버린 사건 말이다. 게다가 뒤이은 군부독재정권은 "주민등록법"이라는 아주 기만적인 정책을 만들어낸다. 내용인즉, 축사에서 가축들 숫자 센다고 소나 돼지의 귓바퀴에 구멍을 뚫고 인식표를 붙이고 번호 매기는 거랑 하등 다를 바는 없는데, 정부는 그래도 ^국민^들 먹여살리려면 시키는 대로 일하는 노예도 좀 있어야 되고, 국제사회에서 체면도 좀 차리려면 구색도 맞춰야 되니까 난민들한테도 무려 13자리나 되는 인식표를 나눠주면서 우리들도 "국민"이라고 그랬다. 그래, 국민이면 국가공무원한테 가서 주민등록증 내밀면서 "나 대한민국 국민이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 주민의 권리를 좀 내놓으시오." 하면 집도 나오고, 쌀도 나오고, 좀 맘 편히 몸 성히 일할 수 있는 일자리도 나오고 해야 할 것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된 놈의 나라는 주민등록증이 쓸 데가 없냐? 주민등록증을 쓸 때란 은행에서 돈 찾을 때와 경찰에서 진술할 때가 아니면 도무지 쓸 데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은행에서 돈 찾을 땐, 주민등록증만 들이민다고 돈을 주는 게 아닌 걸 보면 분명 주민등록증에도 등급이 있는 모양이다. 쇠고기에도 등급이 있듯이 우리들 몸에도 저마다 매겨진 등급이 있는 걸 보면 역시 우리가 쥔 이 조그만 카드는 "주민등록증"이 아니라 인식표가 분명하다. 하긴 그래, 군대에서도 이걸 인식표라 부르지. 우리 이제부터 가축들처럼 모두 귀를 뚫고 이 인식표를 귀에 꿰고 다니자.
아무튼지간에 그렇다.
국가가 있어
국민이 있고, 난민이 있고,
인민은 사라지고 말았다.
우린 모두 난민이다.
우리는 모두 인민이라는 이름을 잃어버린 난민이다.
우리가 우리를 찾아온 또 다른 난민과 손을 잡는 것은, 우리 모두 "국민"이 되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우리 함께 사람이 되기 위한 투쟁, 인민이 되기 위한 투쟁, 인간성을 되찾기 위한 투쟁이다.
- 출애굽기 23:9 [본문으로]